역대 대선(13~18대)에서 추석은 표심의 풍향계로 여겨졌다. 전국의 가족들이 명절 밥상에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세대와 지역의 여론이 섞이고 퍼지는 화학 작용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실제 추석을 전후로 판세가 요동쳤고, 추석 민심을 가져온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대선을 앞둔 추석에 사람들이 모여 정치 얘기를 많이 한다는 점, 언론사들이 추석을 전후해 특집 여론조사를 한다는 점 등으로 인해 많은 후보들이 추석을 앞두고 출마 선언 등 이벤트를 열어왔다”고 했다. 박씨는 또 “추석 효과를 가장 잘 누린 후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며 “(대선 직전 해인) 2006년 추석 때 처음으로 여론조사가 (이명박 우위로) 뒤집혔는데, 당시 수도권의 화이트칼라들이 고향에 내려가 부모들을 설득했다는 설이 있었다”고 했다.

내년 대선은 3월인 데다 코로나 상황도 있어 ‘추석 효과’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이번 연휴를 거치면서 본선 티켓의 주인공이 사실상 가려진다는 점에서 추석이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일러스트=유현호
일러스트=유현호

◇與 ‘명낙 호남 혈투’, 野 ‘본격화한 尹洪 대전’

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관심은 당의 정치적 터전인 호남에 집중돼 있다. 연휴 직후인 25~26일 최대 승부처인 호남 경선이 열리기 때문이다. 호남 경선에 대의원·권리당원 20만표가 걸려 있고, 호남 경선 결과는 10월 2차 선거인단 투표와 수도권 경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현재 대전·충남, 세종·충북, 대구·경북, 강원 경선에 이어 일반당원과 국민들이 참여한 1차 선거인단 투표까지 5연승을 거두며 누적 득표율 53.71%로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인 이낙연 전 대표의 누적 득표율은 32.46%다. 이 지사는 호남에서 과반 득표를 얻어 대선으로 직행한다는 목표를, 이 전 대표는 추석을 변곡점 삼아 이 지사와의 누적 득표율 격차를 한 자릿수대로 좁혀 결선투표로 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지사와 이 전 대표는 연휴 기간 동안 호남을 찾아 지역 민심을 공략한다.

추석을 앞둔 국민의힘 주자들의 눈은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TK) 지역으로 향했다. TK는 국민의힘 책임당원의 30%가량이 몰려 있는 당의 핵심 기반 지역. 최근 당내 양강 구도를 구축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은 13일 각각 경북 안동과 대구를 찾았다. 윤 전 총장은 17일에도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문 등 TK일정을 소화했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의 본선 경쟁력을, 홍 의원은 ‘윤석열 리스크’를 부각하며 치열한 선두권 다툼을 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19일 방송되는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출연한다. 윤 전 총장 캠프 관계자는 “추석 밥상에서 윤 전 총장의 자연스럽고 친근한 모습이 화제가 되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홍 의원은 추석 전날인 20일 유튜브 채널 ‘TV홍카콜라’ 라이브 방송을 통해 유권자들을 만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3일부터 매일 저녁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안 대표가 추석 직후 대선 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이냐, 박지원이냐가 최대 화두”

현재 모든 정치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는 블랙홀은 고발 사주 의혹이다. 윤 전 총장이 지난해 총선 직전 현직으로 있을 때 대검 간부를 통해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여당 의원 등의 고발을 사주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2일 관련 보도가 처음 나왔고, 공수처는 10일 윤 전 총장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씨가 제보 전에 박지원 국정원장을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자 윤 전 총장 측은 조씨와 박 원장을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여당은 이 의혹을 윤 전 총장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야당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으로 규정한다.

홍득표 인하대 명예교수는 “고발 사주 의혹이 추석 밥상에 오를 최대 화두로 보인다”며 “정치에 관심이 있는 가족들이라면 이 문제를 두고 상당한 갑론을박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의혹의 주인공이 ‘윤석열’이냐 ‘박지원’이냐가 추석 민심을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지사의 성남시장 재직 시절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국민의힘 대선 경선 TV토론 등도 추석 밥상에 오를 이야깃거리로 거론된다. 북한의 무력 도발도 화두다. 북한은 과거 추석 연휴를 전후해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은 지난 15일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추석 민심으로 스러진 안철수, 정몽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19대 대선은 2017년 5월 9일 치러졌다. 이때는 설(1월 28일)이 종래의 추석 역할을 했다. 당시 야권의 유력 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총장(무소속)은 설 연휴 기간 동안 정치권 인사들을 두루 만나는 등 분주했지만 ‘문재인 대세론’을 꺾을 순 없었다. 설 연휴 직후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민주)는 반 전 총장을 ‘더블 스코어’로 앞섰다. 반 전 총장은 2월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18대 대선(2012년) 때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무소속)은 추석 연휴를 열흘 앞둔 시점에 출마 선언을 했다. 1위 박근혜 후보(새누리)를 문재인 후보(민주)가 뒤쫓던 구도의 대선 판세가 요동쳤다. 출마 선언 당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한국갤럽의 ‘박근혜 대 안철수’ 양자 대결에서 안 후보는 지지율 49%를 기록, 박 후보(44%)를 오차범위(±2.8%포인트) 내에서 앞섰다. 그런데 연휴 직후인 10월 4~5일 같은 업체가 실시한 조사에서 두 후보의 양자 대결 지지율은 각각 47%로 동률을 이뤘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안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세였다. 연휴 동안 컨벤션 효과가 줄어들고, 다운계약서 논란이 이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안 후보는 11월 23일 문 후보를 지지하며 대선 후보에서 사퇴했다.

16대 대선(2002년) 때는 정몽준 당시 의원(무소속)이 추석 연휴 사흘 전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월드컵 열기에 힘입어 부상한 정 후보 지지율은 이회창 후보(한나라)에 이어 2위를 달렸다. 그러나 추석 이후 이미지 정치의 한계가 드러난다는 지적 속에 지지율은 하락했다. 정몽준은 대선을 3주 앞둔 11월 말 노무현(민주)과 후보 단일화를 했고, 노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했다.

15대 대선(1997년) 때는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가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신한국당 경선 불복과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여기에 연휴 내내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 이른바 ‘병풍’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이회창 대세론’이 붕괴됐다. 추석 직후 지지율 1위를 달린 김대중 후보(국민회의)가 결국 대통령이 됐다.

17대 대선(2007년)에선 일찌감치 이명박 후보(한나라)의 대세론이 형성돼 추석 영향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2006년 추석 민심이 중요했다. 그해 9월까지만 해도 이명박·박근혜 후보는 엎치락뒤치락하며 선두 경쟁을 벌였는데, 추석 이후 이 후보 지지율이 크게 오르면서 독주 체제를 굳혔다. 추석 연휴 때 ‘청계천 복원’ ‘교통망 재편’ 등 이 후보의 서울시장 재직 시절 업적이 지방으로 전파됐다는 점, 추석 전 여론조사에 나타난 이 후보 상승세가 밴드왜건 효과를 불러왔다는 점이 지지율 상승 요인으로 분석됐다. 2007년 추석 밥상에선 ‘신정아 사건’이 화제였다. 신정아씨가 예일대 박사 학위를 위조해 동국대 조교수·광주비엔날레 감독이 됐고,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관계였던 변양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의 비호를 받았다는 의혹이다. 노무현 정권에 악재로 작용했고, 여권 후보의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여당은 호남이 이재명·이낙연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야당은 홍준표가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지 여부가 이번 추석의 관전 포인트다. 호남에선 ‘첫 호남 대통령을 만들어야 되지 않느냐’는 기류와 ‘본선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가야 하지 않느냐’라는 기류가 부딪히고, TK와 보수층에서 홍준표의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현재 윤석열에 쏠린 당심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