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_홍득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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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의전도 없는 남북접촉"「중부일보」 2009. 4.27 2009/04/27
홍득표 님의 글입니다.

 기본 의전도 없는 남북접촉


  지난 21일 개성공단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사실상 남북 당국자 간 첫 공식 접촉이 이루어졌다. 개성공단에 대한 북측의 요구사항이나 개성공단의 앞날 등 본질적인 내용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절차적인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북한은 16일 ‘중대사안’을 통지하겠다고 개성공단으로 남한 당국자를 오라고 했다. 대화상대가 누구인지, 의제가 무엇인지도 전연 밝히지 않았다. 우리 측은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북한의 요구대로 대표단을 보냈다. 북한이 원하는 장소에서 11시간동안 기다리다 22분 만에 접촉을 마치고 돌아왔다. 개성공단의 파행에 대한 책임을 우리 쪽에 떠넘기고 기존 계약을 전면 재검토하자는 북측의 일방적인 요구만 듣고 돌아온 것이다.


  북한 당국자를 만나는 것이 아무리 급해도 금방 전쟁이 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에서 누가 나올 것인지, 의제가 무엇인지 사전 알려주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고 버텼어야 했다. 그런 후 접촉 날짜를 며칠 연기하는 전략적인 태도를 취했어야 했다. 북측의 의도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책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필요도 있으며, 협상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만나자고 제의했다는 것은 자기들이 무엇인가 필요한 요구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중대 사안을 만나서 통고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행태를 보이지 않았는가?   


  4.21 개성접촉 과정은 한마디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나라의 자존심도, 체면도, 명분도, 실리도 없는 그야말로 국격에 먹칠을 하는 행위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 처사였다. 이번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북한에 무슨 약점을 잡혔는지 질질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안타깝고 구차스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좌파성향의 정부도 아니고 남북관계에서 상호주의를 약속한 이명박 정부도 예나 조금도 변함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끌려가더라도, 저자세를 취하더라도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좋게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남북 당국자 간 접촉이 아무리 민족내부 문제라고 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의전(儀典)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비엔나협약(1961) 제1조에는 ‘외교관 서열’ 등을 언급하면서 의전문제를 다루고 있다. 외교통상부에서 발간한 「의전실무편람」(2002)의 머리말에서 ‘의전이란 국가, 정부 내에서의 행사, 국가 간의 외교행사 등에서 가져야 할 건전한 상식에 입각한 예의범절까지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개인 간 일상생활에서 예절이 있듯이 국가 또는 국가 간 관계에서도 지켜야 할 의식과 예법인 의전이 있는 것이다. 의전은 불필요한 형식이 아니다. 의전은 국가 간의 공식적인 관계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예의다. 그 나라의 대외적인 품위와 위신 그리고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전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다. 국가 간 협상 과정에 대표단의 직위, 좌석배치, 입장순서, 발언순서, 의제, 회의진행 방식 등등 의전에 많은 신경을 쓴다. 특히 참석자의 서열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의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행사 때 서열을 무시하고 좌석을 배치하면 화가 나서 그냥 돌아가 버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국내 행사에서는 자리배치 등 의전문제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을 하면서 북한에 대하여는 왜 그리 원칙이 없는 저자세인지 모르겠다. 차관급 회담에 북한이 국장급을 내보내도 격을 문제 삼기보다 그냥 수용한 적이 있었다.   


  북한의 어느 부서, 어느 직책, 어느 사람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오라고 한다고 대표단을 보내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의제가 무엇인지 전연 모른 채 중대 사안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면서 다양한 예상시나리오를 상정하여 대책을 준비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격식이나 절차 그리고 의전보다는 실질적인 성과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의전은 기본적인 예의다. 기본 의전조차 무시당하면서 질질 끌려 다니는 이유를 모르겠다. 북한이 만만하게 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개인이나 국가나 의전을 무시하고 품위를 지키지 못하면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법이다.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홍득표 명예교수 ☎010-5335-7866(CP), E-mail: hongdp@in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