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_홍득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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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정치학의 특징"「중부일보」 2009. 3.31 2009/04/03
홍득표 님의 글입니다.

 리스트 정치학의 특징 


  최근 박연차ㆍ정대근 리스트가 봄 정국을 강타하는 것 같다. 여기에 고(故) 장자연 성 상납 리스트까지 겹쳐 파문이 일고 있다.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사들의 실명이 떠돌고 있다.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된 인사들이 하나 둘씩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구속 수감되었다. 그 리스트에는 정관계를 포함하여 수십 명의 이름이 올라있다고 하니 명단이 전부 공개되면 정치권은 초토화 될 것 같다고 할 정도다.


  박연차 리스트 정국에 대하여 음모론, 정치적 의도론, 편파 수사론, 표적 사정론, 야당 탄압론까지 등장하고, 수사의 칼날이 마지막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다는 소문도 있다. 성급하게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리스트에 올라있다고 소문난 면면이 전 현직 청와대 인사에서 여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검찰ㆍ경찰ㆍ국세청 고위 간부 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골고루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권력형 비리나 각종 부패사건이 떠질 때마다 연루된 사람들의 리스트가 떠돌았다.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에서 손을 봐야 할 사람들의 리스트가 나돌기도 했다. 워낙 비리가 많고 의혹투성이의 한국정치에서 비리 등에 연루된 리스트가 회자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를 ‘리스트 정치학’이라고 부르면서 두 가지 특징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리스트에 올라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법정치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잡아뗀다. 검찰 출두 전에 돈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설사 인정하더라도 가장 흔하게 써 먹는 수법이 합법적인 정치후원금을 받고 영수증 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사람과는 친분이 없다고도 한다.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며, 무슨 행사장에서 지나치면서 한두 번 만난 것이 고작이라고 한다.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면서 검찰에 나가 모든 진실을 밝혀 혐의를 벗겠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검찰 조사를 받고 혐의가 입증되어 구치소로 향할 때는 출두 당시 당당했던 모습은 간 곳이 없다.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사들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변명하거나 잡아 뗄 궁리를 하기 전에 자숙하는 의미에서 조용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검찰이 정관계 고위인사들을 소환할 때는 확실한 증거가 확보된 상태라고 봐야 하기 때문에 검찰 소환장을 받았으면 일단 입장 표명은 삼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짓해명이나 변명은 오히려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 올 것이며, 또 다른 거짓말로 도덕성에 흠집만 깊게 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특징은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의혹을 받는 인사들에 대한 수사결과에 대하여 국민은 항상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동안 권력형 또는 대형 비리 사건에 대하여 검찰이 속 시원하게 파헤친 적이 별로 없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국민입장에서는 검찰이 아무리 엄정하게 수사를 하더라도 만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청와대, 정치권, 고위 관료, 대기업 등에 대하여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는 국민 입장에서는 비리가 있는 모든 인사들이 사법처리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과 그들은 비리를 저질러도 법망을 잘 빠져 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언론이 보도한 리스트의 규모와 실제 검찰 조사를 받고 사법처리 된 결과 간에 현저한 차이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언론 보도를 통하여 박연차 리스트가 70여명쯤 된다고 국민은 알고 있는데 만의 하나 고작 10여명 선에서 수사를 일단락 짓는다면 누가 공정한 검찰권 행사라고 믿겠는가?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박연차ㆍ정대근ㆍ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살아 있는 권력이든 죽은 권력이든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정치권의 빅뱅을 가져오는 한이 있더라도 성역 없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리스트가 말끔하게 정리되어 리스트 정치학이란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홍득표 명예교수 ☎010-5335-7866(CP), E-mail: hongdp@in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