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_홍득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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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세우기 정치 안된다"「인천일보」 2007. 6. 19. 2007/06/19
홍득표 님의 글입니다.


   줄 세우기 정치 안 된다




                                              홍 득 표(인하대 교육대학원장)




  출세하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재수 없게 줄을 잘못 섰다가 낭패를 보았다는 푸념도 귀에 낯설지 않다. 같은 조건인데도 어느 줄에 서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사회가 그 만큼 안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줄서기 경쟁이 가장 심한 곳은 정치권이 아닌가 싶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캠프에서는 현역의원 30여명이상이 포함된 대규모 선대위 명단을 발표하였다. 손학규 전경기지사의 대선 출정식에는 범여권 의원 6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서 어느 당의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줄서는 문제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말이 떠올랐다. 대권후보 중 어느 한쪽에 줄을 서야 할지 많은 고심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유력 대선후보 캠프에서 끈질기게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면서 어느 쪽인지 태도를 분명하게 밝힐 것을 요구받았다는 것이다. 후보 경선일이 다가오면서 줄을 잘 서야 하는 정치적 승부수 때문에 많은 밤을 설쳤다는 것이다.


  많은 현역의원이나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들은 이미 어느 한쪽 진영에 줄을 섰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는 정치인들도 많다. 이미 줄을 선 사람들은 제대로 줄을 선 것인지 여론의 향배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불안해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경선일이 다가올수록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고민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


  줄을 서는 이유는 ‘때문에’와 ‘위해서’ 등 두 가지 유형이 있을 것이다. 대권 후보와 오랫동안 개인적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그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에게 정치적으로 너무 많은 신세를 졌기 때문에, 그가 대통령 재목으로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가 잘 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줄을 서는 경우다.


  다른 한편 대선 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줄을 서는 경우다. 어느 한쪽에 줄을 서서 경선과정에 큰 역할을 하고 그가 대선 후보가 되면 열심히 선거운동에 나서서 당선시키는데 일조하고 내년 4월 치러질 총선에서 공천을 보장받기 위해서 줄을 서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반대쪽에 줄을 서면 공천은커녕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을지 몰라서 줄을 서는 것이다.


  정치생명을 걸고 줄을 서야 할지 말지, 줄을 선다면 어느 쪽에 서야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어정쩡한 충고를 했다. 어느 시민단체는 한쪽에 줄을 서지 않고 경선과정에 중립을 지키다가 일단 후보가 결정되면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그당 후보를 적극 지지한다고 하더라. 그러니 끝까지 줄을 서지 말고 기다리다가 후보가 결정되면 대선에서 당신의 선거구에서 압도적인 지지표가 나올 수 있도록 선거구나 잘 관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별로 귀담아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12월 대선이 끝나면 2월말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4월 총선에서는 갓 취임한 힘 있는 대통령이 당의 공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한데 줄을 서지 않으면 정치생명이 끝날 것 같다고 철석같이 믿는 분위기였다.


  정당정치가 발전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반대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관용정신에 위배된다. 줄을 잘못 섰다는 이유  때문에 능력 있는 정치인이 공천에서 탈락되는 것도 문제다. 당권과 대권이 분리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공천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문제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정치개혁은커녕 첫 작품으로 같은 사냥꾼만 챙기는 엽관주의도 문제다. 더구나 이미 대세로 자리 잡힌 상향식 공천의 정당민주화도 문제다.


  줄을 설 필요가 없는 정치, 설사 재수 없게 줄을 잘못 섰더라도 정치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정치를 기대 할 수는 없을까?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홍득표 명예교수 ☎010-5335-7866(CP), E-mail: hongdp@inha.ac.kr